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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상스 / 피아노 협주곡 2번 G 단조, op.22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potamia 님

그 작은숲 강가 2013. 7. 30. 21:50
 
Camille Saint-Saens (1835~1921)
Piano Concerto NO.2 in G minor. op.22
Arthur Rubinstein      piano
Eugene Ormandy & Philadelphia Orchestra
Rec.1969,RCA Red Seal
1. Andante sostenut
2. Allegroscherzando
3. Presto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근대 프랑스 작곡가들은 피아노 음악에 크게 공헌했으며 , 그 중에서도 생상스는 유려하고 색채적인 프랑스 피아노음악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이다. 이 작품은 1868년 러시아의 대 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스타인이 프랑스로 연주여행을 왔을 때에, 그가 지휘자로서 파리 데뷔에 맞추기 위해 루빈스타인의 의뢰를 받아 3주 만에 다급하게 완성된 곡이다.  그리고 곡은 루빈스타인에게 헌정되었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생상스 자신의 피아노 연주와 안톤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1868년 5월 13일, 파리에서 이 초연되었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초연은 실패에 가까웠지만,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후에 생상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을 모두 다섯 곡이나 썼지만 [2번 협주곡]에 견줄 수 있는 작품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피아노 협주곡 1번]만을 기억하듯이, 생상스가 작곡한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2번 협주곡]이야말로 생상스의 이름을 빛나게 한 작품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작품을 난도질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지요. 첫 악장은 통일성이 부족하고 피날레 악장은 완전하게 실패했습니다. 연주를 위해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더구나 나 또한 상당히 서투르게 연주했습니다. 스케르초 악장만을 제대로 연주했을 뿐 나머지 악장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가까웠죠.' – 카미유 생상스
피아노의 생상스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초연 실패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프린츠 리스트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이었다. '당신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찬사를 보내야 마땅합니다. 당신이 창안해낸 형식은 새롭고도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장이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으로 그 음악적 흥미가 더욱 세지고 피아니스틱한 효과들이 환상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 리스트의 예언은 결국 실현되었다.
생상스가 남긴 최고의 피아노 협주곡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필수적인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 작품은 즉흥곡처럼 시작하는 첫 악장에서 보여지듯이 대단히 혁신적인 작품이다. 섬세한 터치와 깊이 있는 음색과 더불어 테크닉까지 갖춰야 이 작품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
11세 때 데뷔한 생상스는 음악 역사상 최고의 조숙한 천재 중의 한 사람이었다.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고도 하고, 그때 이미 작곡을 시작했다고도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세 살 때 읽기와 쓰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곱 살 때는 라틴어를 달달 외었고, 열세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었다. [교향곡 1번]을 작곡했을 때 생상스의 나이는 고작 열여덟 살이었다. 너무도 조숙했던 생상스는 생물학, 고고학, 천문학 등 많은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시와 희곡 그리고 철학논문까지 썼다.
그는 한마디로 천재의 전형이었다. 생상스의 경우 모차르트, 멘델스존과 함께 유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엄청난 주목을 받은 작곡가에 속했다. 그러나 생상스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는 작곡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에는 물론 그렇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와 프랑스에 체류한 음악가들은 대부분 생상스를 만나보기를 원했고, 수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생상스에게 선보이려고 아우성이었다.      -네이버 캐스트, 발췌 편집 -
 
 
201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