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이야기

유럽의 묘지에서 발견한 보화들.../이글레시아스(Julio Jose Iglesias)&Dalida / La vie en rose / 음정 cello911님

그 작은숲 강가 2014. 7. 13. 20:33

 

 

제가 좀 별난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왜 그렇게 묘지를 찾아다니는지...

유럽의 공동묘지에는 우리가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음악가들, 작가들, 예술가들의 무덤이 있어서 그들의 묘를 찾아보는 일은

마치 보물찾기 하는듯이 매우 흘미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중앙묘지 Central Cemetry에 있는 악성 (樂聖)들의 묘

 

 

음악의 도시 비엔나의 중앙 묘지에는

악성 (樂聖)이라고 불리우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모짜르트(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기념비만)와 요한 스트라우스의 묘가

음악의 도시답게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비가 내려 축축한 날 유대인지구에 있는

유대인들의 묘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태리의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롯시니,

단테(기념비만, 묘는 라벤나에), 갈릴레오 등...이태리의 유명인사들 수백명의 묘가 있고

밀라노에는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의 묘가 그가 세운 음악가의 집에 있고

피사에는 중세귀족들의 묘가 있는 캄포산토 묘당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프레스코화 벽화가 유명하지요.

 

 

 

산 미켈레 섬 공동묘지 San Michele Cemetry

 

 

 

물의 도시 베니스에는 배(수상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작은 섬,

산 미켈레 섬 전체가 공동묘지입니다.  이곳에도 러시아의 발레단 창시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 등의

무덤이 있는데 이곳에 갔을 때 찾지는 못했습니다.

 

빠리 시내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는

황금돔이 빛나는 건물에 있어서 나폴레옹의 권위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왕이나, 귀족들의 묘지 보다는

공동묘지에 묻힌 평범한 사람들...

가난과 질병,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창작의 열정으로 가득차 있던

예술가들의 묘지를 찾아보는 것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빠리의 3대 공동묘지 중 가장 큰 페르 라 쉐즈 묘지에는

프레데릭 쇼팡, 샹송가수 에디뜨 삐아프, 이브 몽땅과 그의 아내,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

오페라 작곡가 롯시니의 빈무덤(유해는 이태리 산타 크로체성당에) 등이 있고

빠리 근교,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2개월 정도 살았던 오베르 쉬즈 와즈에는

고흐가 즐겨 그렸던 밀밭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공동묘지에

테오와 함께 나란히 묻혀 있는 고흐의 무덤도 있지요.

위에 열거한 묘지들에 대해서는 저의 여행기에 다 있습니다.

 

 

 

IMG_4689-s.jpg

 몽파르나스 묘지

 

 

이렇게 기억해 보니 유럽의 묘지들을 어지간히 많이 다닌 셈인데

이번 여행에서도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성당 안 제단 바로 앞에 있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묘를 보았고 프랑스 근교 지베르니의 교회묘지에 있는

수련의 화가 모네의 묘도 둘러보았습니다.

 

또한 빠리의 근교에 있는 다른 두 묘지, 몽마르트 묘지와 몽파르나스 묘지에도

이름 정도라도 알만한 인사들의 묘가 있어서 시내의 뮤지엄을 제치고

그곳에서 몇몇 인사들의 무덤을 찾는다고 이틀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하루는 몽마르뜨 묘지를...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만난 장례행렬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알만한 이름으로 음악가 생상, 작가 모파상, 보들레르

그리고 싸르트르와 그와 51년간 계약결혼을 하였던 시몽 보봐르의 묘가 있습니다.

흥미롭지요? 뭐 제가 생상, 모파상, 보들레르, 싸르트르와 보봐르 등에 대해서

잘 아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니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었지요.

 

빠리는 전철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다니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아서

전철을 몇번 바꿔타기는 했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묘지 입구에는 이곳에 묻힌 위에 언급한 인사들의 지도가 있어서

이들을 찾아나섰는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모파상의 묘지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르킨 지역을 아무리 헤메여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거예요.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ㅋㅋ

결국은 경비를 보는 직원에게 가서 못찾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함께 가 주더군요. 고맙게도...

 이의 강남스타일 덕을 보았습니다.

흑인이었는데 어디에서 왔느냐고 해서 미국에서 왔지만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강남스타일 흉내를 내더군요. ㅎㅎ

 

 

 

 

그렇게 해서 겨우 찾을 수 있었던 모파상 (Guy de Maupassant, 1850 - 1893)의 묘입니다.

지병인 정신질환이 있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모파상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발작을 일으켜

43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우리에게 많은 단편소설을 남겼지요.

오래 전에 "빠리의 에펠탑과 모파상"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이 있습니다.

http://blog.chosun.com/triocavatina/5251314

 

 

 

 

프랑스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우는 후기 낭만주의 최고의

작곡가인 까미유 생상의 묘는 마치 기도실같아 보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생을 마감했고 빠리의 마드레느 성당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있네요.

유대인혈통이었기에 묘에는 유대인의 별이 있더군요.

 

저의 음악이야기 폴더에

"아프리카에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음악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까미유 생상(Camille Saint-saens:

1835 - 1921)에 대한 포스팅이 있습니다.

http://blog.chosun.com/triocavatina/6073638

 

 

 

 

 

 

 

프랑스의 비평가이며 시인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묘

(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 - 1867), 앞에 꽃들과 함께 놓아둔지 오래 되지 않은 것같은 구두가 한컬레 놓여있고

누군가 쓴 편지인지 돌로 눌러 좋은 종이 쪽지가 있었습니다.

.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 - 1980)와 시몬 드 보봐르(1908 - 1986)의 묘입니다. 이들의 51년간의 계약결혼은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이들의 묘는 그 어떤 묘보다 조촐하였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예술가들의 꿈과 낭만과 애환이 서린 곳이라는 몽마르뜨 언덕의

크레 쾨르 사원 앞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누군가 공을 가지고

멋진 묘기를 보이고 있어서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장난감같은 관광 트레일을 타고 빨강풍차라는 이름의

물랑루즈가 있는 피갈의 몽마르뜨 묘지 앞에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시내를 돌아 묘지 앞에 내려서 낙서가 마치 현대미술 같이 그려진

길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니 묘지 입구가 나옵니다.

 

 

 

몽마르뜨 묘지

 

 

몽마르뜨 묘지를 꼭 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곳에 작가 에밀 졸라, 화가 밀레와 드가, 시인 하이네 등의 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환상교향곡의 작곡가 베를리오즈와

호프만의 뱃노래의 작곡가 오펜바흐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비평가 에밀 프랑수아 졸라 (Émile

François Zola, 1840-1902), 빠리의 하층계급의 동자들에

대한 글을 많이 쓴 난하였던 작가...

방안의 난로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폴란드계 러시아 발레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

(Vaslav Nijinsky:  1890 - 1950),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패트루슈카>에서 인간의 혼을 지닌 삐에로인

페트루슈카역의 모습으로 내내 앉아 있으니...ㅋㅋ

 

 

 


 

 

 

 

화가이며 조각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 - 1917), 그의 발레리나들의 그림과 조각은 누구나 좋아하는 작품...

이곳 파사데나의 노톤 사이몬 뮤지엄에는 드가의 작품이

유난히 많이 있습니다.

일생 독신이었대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며 평론가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 - 1856), 유대인 상인의 장남으로 

출생... 슈만이 하이네의 시를 가곡으로 작곡하기도 했지요.

1831년 빠리에 망명하여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저술활동을

하였는데 결국은 이국땅에 이렇게 외롭게 묻혀 있네요.

 


 

 

 

 

 

 

                                                                       *****

 

 

이곳에는 <환상교향곡>으로 유명한

헥토 베를리오즈(1803-1869)의 묘도 있습니다.

 

 

대부분 예술가들의 사랑, 실연, 고독, 슬픔, 가난..등이

그들의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듯이 베를리오즈도

아직 무명시절에 사랑의 열병을 호되게 앓았지요.

 

 

아일랜드출신 여배우 해리엣 스미슨(1810-1854)이

빠리의 오데온 극장에 와서 햄릿의 오필리아역으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사랑에 푹! 빠져버린 베를리오즈,

그녀가 공연하는 극장에 가서 극장주를 통해 쪽지를

건네주며 한번이라도 만나려고 했지만 한창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그 당시 무명의 음악가였던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사랑의 격정에 시달리던 베를리오즈는 그의 대표작,

"환상교향곡"을 작곡함으로 결국 유명해지고

배우로서 인기가 떨어진 헤리엣은 마침내 유명해진

베를리오즈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여

그들은 6년만에 결혼을 헸대요.

 

 

그러나 환상과 실상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공존하는 것...

 

유명 배우로서의 명성이 희미해진 헤리엣, 그러나

그녀의 허영심은 여전하여 결혼 후에도

아들이나 가사에 소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요.

그러한 해리엣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열정과 환상이

여지없이 깨어져버렸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10여년만에 별거함(1844년)으로 끝나버립니다.

 

 

별거 후 성악가 Marie Recio (1814-1862)와 열애를

하다가 1854년 헤리슨이 죽자 그녀와 결혼을 하지만

그녀도 베를리오즈보다 먼저 1862년에 죽고 맙니다.

 

헤리엣이 낳은 아들도 젊은 나이에 죽자 충격을 받은

베를리오즈도 몇년 뒤 1869년에 사랑의 열정도

사랑의 환상도 막을 내리고...

이렇게 두 아내와 함께 있네요.

 

 

이 세상에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요?

 

서유석의 노래처럼 사랑은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의 소유욕같은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어쩌면 그러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대목에서 왜 서유석의 노래가 뜬금없이 생각나는지...

오래 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 대해 포스팅하면서

톰 존스의 딜라일라가 생각났었던 것처럼 말이예요.

못 말리는 첼로...ㅋㅋ

 

몽마르뜨 묘지에는 제가 참 좋아하는작곡가이며

첼리스트로 유명한 쟈크 오페바흐의 무덤이 있어요.

(Jacques OffenbachL 1819-1880)

 

 

오펜바흐는 독일의 퀼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유대인으로 음악교사이자 작곡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불과 14세인 1833년에 빠리에 와서

첼로를 공부하고 오페라 코미크 교향악단에서

첼로 주자로 연주하면서 많은 작곡을 하였습니다.

 

그는 오페라의 전신인 오페라타를 100곡이 넘게

작곡하여 오늘날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1850년에는 프랑수아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1855년에 자신의 소극장을 설립하여 자신이 작곡한

오페레타를 공연하였다고 하니 작곡자 자신이

소극장을 소유할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지는 짐작이 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프만의 이야기>는

미완성이었는데 친구인 에르네스트 기로에 의해

완성되어서 그가 죽은 다음 해 1881년에

초연되었다고 합니다.

 

제 음악이야기 폴더에 <지옥의 오르페우스>서곡과 함께 오르페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http://blog.chosun.com/triocavatina/5590563

 

 

 ******

 

 

 

 

 

 

 

http://blog.chosun.com/triocavatina/5370230

<사랑의 실패가 낳은 "환상교향곡"과

톰 존스의 "딜라일라">라는 포스팅입니다.

 

 

 

 

 

이태리인 부모에게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출생하여 1954년에 

미스 이집트가 되었던 미모의 샹송가수 달리다 (Dalida: 1933 - 1987),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빠리에 왔지만 노래공부를 하게 되어

2년만에 가수로 성공하지만 그녀가 사랑한 사람들 3명이 모두 자살을 하였고

그녀도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다가 결국 54세의 나이에 자살로

화려했던 생을 마감하고 여전히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으로

몽마르뜨 묘지에 있었습니다.

 

 

 

 

 

  

묘지의 문을 닫는 해질 녁....

남편의 묘에 다녀가는 것인지 부모님의 묘에 다녀가는 것인지

물통과 대야를 들고 돌아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리고 보라빛 벨벳 모자가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물랑루즈의 현재의 모습,  캉캉쇼를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뮤지엄에서  <1900년 몽마르뜨>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 물랑루즈의 흑백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묘지에서 나와 시내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빨강 풍차가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19세기 화가 앙리 로트렉이 한쪽 구석에 앉아서 무희들을 그렸다는 물랑루즈...

로트랙의 포스터들이 유명하지요.

 

물랑루즈.. 쇼를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곳, 캉캉춤을 한번 볼까 망설이다가

지금은 관광객 상대의 저급한 쇼를 하고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버린

얌전한 첼로입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휼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Jose Iglesias)와

달리다가 함께 부르는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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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은

장미빛인가요?

 

 

'Memento Mori!"

"Remember that you will die!"

 

 http://cafe.daum.net/musicgarden/Eccn/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