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이야기

다정도 병인양하여.. 필리에 다녀와서 .../ 음정 cello911님

그 작은숲 강가 2016. 3. 4. 22:36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李兆年) -









잠시 일주일간 막내가 사는 필라델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차가운 겨울비가 종일 내리고

안개 자욱하며 바람도 많이 불고 있어서

봄은 아직도 멀리 있었습니다.









딸은 둘째를 낳고는 시집으로 들어가 3년이나 지내다가

분가한 지가 1년도 더 지났는데 사진에 미친 엄마가 다른 곳은 열심히 다니면서

딸 네집에는 아직 가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마침 며칠동안 사위가 연주 투어가 있어서 집을 비운다고 하여

애들이나 봐주러 갔지만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는 딸을 따라 가서

챔버 오케스트라 리허설, 라이브 카페에서의 현악사중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관람하고

필라델피아 박물관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등 오랫만에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또힌 사진을 찍는 엄마를 생각하여

안개 자욱한 날 가까운 숲에도 함께 갔었습니다.

겨울 숲이라 나무들은 모두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어서

그저 우울한 모습이었지만 그 중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아직도 연한 갈색의 잎을 떨구지 못하고 있어서

마치 앙상한 숲 속에 피어있는 꽃과 같았습니다.









숲을 지나 작은 연못이 있는 곳에 다다르니

안개가 얼마나 짙어지는지...

몇 컷 열심히 담고 나니 어느 새 안개는 걷혀 버리고..

역시 사진은 순간포착이 매력이지요.

잠시 동안이지만 사진을 찍고 나니 그동안 우중충한 날씨에

우울하던 몸도 마음도 밝아졌습니다. ㅎ











예전에는 딸을 가진 엄마는 비행기를 탄다고 했었지요.

그러나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세대에서는

그런 말이 필요가 없어진 것같습니다.


저야 아들이 없으니 딸과 아들의 다른 점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동생의 솔직한 말,

며느리가 애를 낳을 때는 그토록 측은한 마음이 없었는데

딸이 애를 낳을 때는 마음이 찟어지듯 아프더라고...ㅋ

애를 키우는 것을 보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할 때

'너는 딸 한 명이지만 나는 셋이나 있어' 라고 하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세 딸들 중에서 막내는 학교에 다닐 때는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엄마의 문화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활동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과 양육과 함께 이제 음악은 딸에게는 냉정한 현실이지요.

더구나 멀리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기 때문에 

엄마의 딸에 대해 꿈 꾸던 문화적 허영심도 더 이상

날개를 잃어버렸구요. ㅋ


언제 그렇게 그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는지,

1/10, 1/8, 1/4, 1/2, 3/4 사이즈를 거쳐서 full size cello로..

악기의 사이즈가 변할 때마다 앉는 의자도 점점 커지고... 

어느 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도 학교 다닐 때가 그립다고 합니다.

다행이 딸은 한참 바쁘게 활동하고 있고

음악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집안 살림도 알뜰하게 잘하고 냉장고 안도 얼마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지,

잔소리할 일이 없이 잘 살고 있어서 도와주러 갔다는 것은 핑게일 뿐

제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바쁘게 사는 딸을 오히려 번거롭게 한 셈이예요.

에고, 딸자랑했나요?   첼로가 팔불출이예요. ㅋ










그래도 돌아오기 전 날은 딸이 종일 리허설이 있어서

손녀를 딸 대신 학교에서 픽업해야 하기에 딸을 따라 나가지 못하고

뭐라도 다녀 간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오전에 한국마켓에 가서 장을 봐 종일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매운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아서 맵지 않은 것으로

애들도 먹을 수 있는 갈비찜과 닭찜과 생선전을 만들어

조금씩 담아서 냉동에도 넣고 금새 먹을 것은 냉장에 넣고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고...




에고, 자식이 무엇인지...

"다정도 병인양하여..."

밤새 밤 잠을 설치고 새벽에 떠나왔습니다.








오랫만에 딸이 좋아하는 Dmitri Shostakovich (1906 - 1975)의 Cello Sonata in D minor, Op 40을
Daniil Shafran (1923 - 1997)의 연주로 듣습니다.


다닐 샤프란, 러시아의 첼리스트지요.

동시대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와는 달리 러시아에서만 활동하다가

1960년 이후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를 알린 다닐 샤프란의

아버지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고 하니 역시 탁월한 음악가는 가계에 흐르는 것같습니다.

다닐 샤프란에 대해서 역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Sviatoslav Richter (1915 - 1997)가 한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 잠시만 기다리시요.  샤프란도 있습니다."

음악가들 사이에서 동료 음악가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