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 음정 雲鈺님

그 작은숲 강가 2015. 11. 4. 07:37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울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