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이야기

변신>의 작가 카프카와 그의 박물관...프라하에서 / Schindler's List /John Williams / 음정 cello911님

그 작은숲 강가 2015. 8. 14. 04:16

 

 

<변신>의 작가, Franz Kafka(1883-1924)와 그의 박물관

  

 

 

 jewish village, smetana & kafka museum, opera house 198.JPG

 

 

 

오늘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카프카,

사르트르나 까뮈의 실존주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카프카,

인간 존재의 허무와 절대고독을 그린 그의 대표작인 <변신>은 젊은 날 누구나 한번쯤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이 책을 가지고 씨름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읽어본 지가 얼마 만큼의 세월이 지났는지 기억 조차 가물거리는데

그래도 그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있어서 그의 박물관을 찾아가는 마음이 너무나 설레였습니다.

 

그 전날 프라하 城에 갔을 때 카프카가 6개월간 머물며 집필 활동을 했다는

그의 집(일명 '푸른집')은 애석하게도 황금 소로가 공사 중이어서 인형 박물관의 이층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 구 시가지를 나와 카를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비에 젖은 돌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습니다. 

 

 

 

 

 

 

 

가는 길에 이런 Shakespeare Asynove라는 서점과 갤러리와 보석 가게도 지나 갔습니다.

이 서점은 혹시 빠리에 있는, 조지 휘트먼이 창업했던 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서점과

같은 계열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지난 6월에 잘 아는 후배가 프라하를 여행한다고 하면서 저의 프라하 여행기를 열심히 읽고 가더니

이 가게에 들어 가서 물었보았더니 빠리에 있는 가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저와 코드가 잘 맞아서 유럽 어느 시골에  같이가서 몇 달쯤 살자고 하는, 참 못말리는 후배입니다.

그 선배에 그 후배이기도 합니다. ㅎ)

 

 

아무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어느 뒷 골목을 헤메이듯

빗 속에서 그를 찾아가는 저의 마음은 마냥 꿈만 같았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니 비에 젖은 카페가 보이고 오른쪽 핑크색 건물 앞에

카프카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얼마 만큼인지...

서글픈 마음과 함께 두려운 마음으로 그의 박물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핑크색 건물은 박물관의 기념품 가게입니다.

 

 

 

 

 

기념품 가게 내부, 이곳에서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는 표를 구입하고

화살표를 따라 밖으로 나오니... ㅋㅋ

 

 

 

 

 

우산을 쓴 몇몇 관광객들이 모여 뭔가를 열심히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박물관 앞 광장에 마주 보면서 오줌을 싸고 있는 두 남자동상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웃고 있는 관광객...ㅎ

도대체 이런 동상이 이 박물관과 카프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몇 군데 검색을 해 보아도 그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조각은 체코의 조각가 쩨르니가 만든 것이고 두 사람이 서 있는 받침대(물통)가

체코의 지도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 궁금증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이 조각작품은 체코 동서양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며

카프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또한 서점의 나이 많은 직원은 요즈음에는 프라하 사람들도

카프카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카프카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아느냐고 놀라더라도 하더군요.)

 

 아무튼 무슨 의미로 카프카 박물관에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박물관 입구,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박물관에 들어서서 안내 책자를 받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니 그에 관련된 사진들과 여러가지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커다란 스크린에 프라하의 과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스메타나의 음악, "몰다우 강"과 함께 시내의 모습이

카프카의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고 있는듯이 온통 흔들리며 흐리게 범벅이 되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그가 독일인과 체코인과 유대인이 섞여 살고 있는 프라하에서 유대인으로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면서 살았는지 그의 고뇌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 깊은 슬픔이 몰려 왔습니다.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의 어는 건물에 걸려 있는 카프카의 두상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993.7.3. - 1924.6.3.)

 

 

 

프란츠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항가리 제국령이었던 프라하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동생 둘이 밑으로 태어 났지만 연 이어 죽고 그 후 태어난 세 누이 동생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되는 등 그의 짧은 생애는 유대인으로서 매우 불행한 41년이었습니다.

 

 

 

Black-and-white photograph of Kafka as a young man with dark hair in a formal suit

Franz Kafka in 1906 (*)

 

 

카프카는 독일인과 체코인과 유대인이 사는 지역에서 살았는데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럽화된 서방 유대인이었고 독일어를 완벽하게 사용했지만 보헤미안으로 독일인도 아니었고

체코인도 아니었던 것으로 갈등하며 살았던 것을 생각하니 오늘날 이민을 와서 남의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민자들에게도 정체성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더욱 마음이 시립니다.

 

또 노동자 재해 보험 협회의 직원으로 시민 계급도 아니고

상점 주인의 아들로 노동자 계급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관료 계급도 아니었기에

이러한 숙명적인 존재에서 오는 상처로 평생토록 괴로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If I write not what I speak, I speak not what I think,

I think not what I ought to so my writing comes from the deepest darkness."

 

"...the innocent and the guilty, both 
executed without distinction in the end...."

 

 

 

 

 

 

 

last day of praha 054.JPG

 

 

 

블타바 강이 흐르는 프라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프라하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했다는 카프카,

"The Prague that I not only love but also fear." from the letter to Ottla, 10/08/1923)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은 프라하는 곧 카프카이고 카프카는 프라하라고

그를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And yet Kafka was Prague and Prague was Kafka.

Never had it been Prague so perfectly,

so typically, as during Kafka's lifetime and never would it be so again. 

And we, his friends, 'the happy few'...we knew

that the smallest elements of this Prague were distilled everywhere in Kafka's work."

Johannes Urzidil - The World of Franz Kafka


  

 

카프카의 동상 Franz Kafka bronze sculpture(*)

 

2003년에 체코 정부가 프라하의 두스니 베첸스카(Dusni Vezenska)거리의 모퉁이에 세워 놓은

청동 조각상인데 목도 팔도 없는 거인 위에 올라 탄 카프카의 모습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변신>의 줄거리

 

가족을 위해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 오던 그레고르...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문 밖에서는 그의 출근을 재촉하는 부모와 여동생의 소리가 들리고, 한 시간도 채 못되어 상점에서

지배인이 달려와 출근을 조른다.  그레고르는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여 번민한다. 

잠겨있던 방문이 열리고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보는 순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지배인은 모두 놀라서

그를 한낱 독충으로 간주한다.  그저 타성처럼 삼아가며 정말 내 삶이 단지 그냥 한마리 벌레보다 나은게 무엇인지,

인간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변신>은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말하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그레고르는 변신 이전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며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가족의 냉대는 더욱 심해간다.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가족은 모두 새로운 직장을 잡고 그레고르는 없어져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느 날 그림에 달라붙어 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절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던져 큰 상처를 입힌다.

며칠 뒤 각별히 아끼던 누이동생이 하숙생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러 나가지만

벌레의 존재를 보이고 싶지 않은 가족에 의해 방에 감금된다.  그 이튿날 청소를 하러 왔던 가정부는

그레고르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피크닉을 간다.


*****

 

  




 

 

 

 

카프카는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07년에는 프라하의 보험 회사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근무 시간 외 저녁부터 밤까지 창작하기에 전념을 하였는데 결핵 진단을 받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교에 있는

결핵요양소 키얼링에 가서 결핵치료를 받을 때도 열정을 다 하여 작품을 쓰다가 1924에 키얼링에서 사망하여

그의 시신은 고향인 프라하로 돌아와 프라하의 지즈코프(Žižkov) 구역에 있는 유대인 묘지에 묻혀있습니다. 

 

그에게는 몇몇 연인들이 있었고 약혼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일생 결혼은 하지 않았고

그가 죽을 때 그의 모든 서류(작품)을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 등을 출판하여 오늘날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이 남게 된 것입니다.


카프카는 일생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지만 기계적인 생활에 매여 직업를 떠나지 못하고

오직 밤에만 글을 쓰면서 심한 우울증과 사회 불안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41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서

현대 문명 속에서 인간이 기능만으로만 평가되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생을 통해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한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에서 인간은 돈을 버는 기계처럼 되었고 물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돈이 없거나 벌지 못하게 되면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인간관계, 하물며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 마저 단절되어 버리는

오늘날의 사회와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그의 작품 <변신>은 더욱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의 박물관을 다녀 온 후 오랫만에 그의 작품 <변신>을 다시 읽어보면서 카프카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기가

두려웠던 것은 나 자신 가족은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한 평가척도를 가지고 살고 있지 않았는지

자책하며 두려운 마음때문이었는데 지금 감히 다시 올리면서도 같은 마음으로 두렵기만 합니다.

 

 

   

 

 

 

 

유대인들의 그 비참한 과거를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지...

카프카의 세 여동생들 모두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게 학살되었다니

1993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신들러의 리스트, Schindler's List"가 생각납니다.

음악은 John Williams가 작곡했는데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이 연주합니다. 

 

이작 펄만 (Itshak Perlman: 1945 - )도 이스라엘 Tel Aviv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지요.

미국의 음악계에서도 유대인들의 존재는 대단합니다.


어느 해 여름 뉴욕주의 사라토가 Saratoga의 야외음악당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는 이작 펄만의 연주를 들었는데

환호하는 열정적인 관객들의 박수에 다리를 절면서 세 번이나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휠췌어를 타고 나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