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장조. Op.13
포레의 초기 실내악 작품들은 전형적이 고전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 고전주의 소나타의 특징이 나타나면서도 다양한 선법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선율과 변하는 조성,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리듬 등 전형적인 포레 음악의 특색이 나타있다. 포레의 천성적인 고요함과 또 간결함과 솔직한 정서와 프랑크등에서도 나타나는 근대 프랑스 음악의 살롱음악적인 프랑스적인 낭만적인 서정의 멜로디, 근대적 화성이 조화되어 신선하고 인상주의를 예고하는 신비한 음들이 물결치고 있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장조]는 포레의 실내악곡중에서 최초의 작품이다. 그의 나이 31세때인 1875~1876년에 그가 생 트노레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할 무렵, 친구인 클레르가에서 작곡되었다. 1877년에 음악협회에서 초연되었으며, 초연한 바이올리니스튼인 폴 비아르도(Paul Viardot)에게 헌정되었다.
포레가 처음으로 출판한 실내악으로 포레의 작곡 초기의 작품으로, 성악과 피아노에 비중을 두었는데, 이런 소품들에서 곡을 새로은 쟝르에 도전한 첫 실내악 작품이다. 이런 실내악 소나타는 포레 이전에는 생상스의 첼로 소나타(1873)가 있을 뿐이었고, 프랑크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보다 앞선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프랑스 음악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다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다른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생 상스의 헌신적인 애정과, 1877년 5월 22일에 그가 '음악신문'에 게재한 매우 열띤 비평문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 소나타는 혁신적인 음악으로 보였기에 출판하려는 출판사가 없었다. 포레의 친구인 클레르가 나서서 이 작품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크코프사에서 출판되었다.
포레는 1872년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스승 생상스를 통해 위대한 오페라 가수 폴린 비아르도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집에는 러시아의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머물고 있었다. 포레는 그 후 4년 동안 예술계 인맥이 두터운 가문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비아르도의 막내딸인 마리안을 유혹하기도 했다. 그녀가 약혼 중이었던(나중에 파혼한다) 1877년 포레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소나타’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소나타가 바로 이 작품이라 보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