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이야기

피러한 목사의 가을에는.../ 이안삼카페에서 배달온 곡

그 작은숲 강가 2014. 9. 29. 22:43

가을, 그 바다는 추석 끝물에 모처럼 안목바닷가에 갔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기를 낚고 있는 강태공들,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홀로 고독하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책을 읽고 있는 소녀도 있었다. 명절 끝 날이라 그런지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람들의 여유가 내 행복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도 닦는 사람이 없다는데도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바다를 산보다 더 좋아한다. 봄에 바다를 쳐다보면 새 꿈을 꾸는 아이를 보는 것 같고, 여름에는 모험과 사랑을 즐기는 젊은이를 만난 듯 흥이 저절로 난다. 가을에 바라보는 바다는 여름과 비할 수 없는 성숙함이 느껴지는 장년 같고, 겨울에는 노년 같은 인생의 진지함이 느껴져 바다가 좋은 것이다. 특별히 한 없이 드높고 푸른 코발트색 가을바다는 어떤 의미를 따지기 전에 쳐다만 보아도 인생의 여유가 느껴진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경망한 느낌까지 들었지만 사색이 깊은 가을바다는 참된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도록 쉼과 평안을 안겨다 준다. 가을 바다는 그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 이제는 아무도 봐 주지 않는 파도가 갈매기와 함께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 말하지 못한 보따리를 풀고 진지하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보석처럼 아름다웠던 지나간 꿈과 애틋하게 가슴 적시게 했던 한여름 밤의 격정들을 뒤로한 채 이제는 조용히 잠재우며 현실로 돌아가서 자신을 찾아가게 한다. 파도는 연신 모래밭에 새겨진 이름들을 지우면서 보이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잔잔함 속에서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근심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비로써 겨울을 생각해 본다. 아니 거울 앞에서 나를 보듯 겨울을 앞두고 이제야 나를 걱정해 본다. 어느 가족은 횟집에서 나오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잘 먹었어. 얼마 나왔어?’ ‘12만원이요.’ ‘비싸다.’ ‘웬걸요, 아버님이 맛있게 드셨으면 됐죠.’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사위가 가족과 함께 외식을 나온 모양이다.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그들은 수고로운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그 분과 함께 걸어가는 듯 한없이 평안하게 보였다. 여름에는 가족끼리 바다에 와도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수선하지만, 가을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다만 모래사장에서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파도소리에 파묻혀 겨울을 더 단단하게 준비케 한다. 하늘에는 이름 모를 구름들이 두둥실 떠있고 바다는 시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며 사람들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은 조개껍질을 줍는다. 또 눈싸움 하듯이 모래를 던지며 놀고 있을 때 엄마는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준다. 할아버지는 낚시로 고기를 잡았는지 간이도마와 초장을 갖고 가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나도 끼워 주세요!’라는 말하고 싶을 정도로 가족애가 진하게 묻어나는 것이 가을바다의 여유가 아닐까. 날씨는 조금 추워 팔뚝이 약간 싸늘하게 느껴지지만 가을 바다에서 이런 여유를 온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알기에 소리 없이 그냥 그들 곁에 있고픈 마음이다. 가을바다는 이렇듯 친구처럼 내 모든 아픔을 싸매줄 것 같은 넓은 가슴이 있어서 좋다. 그 가슴에는 인생의 진지함이 담겨 있다. 여름의 철부지들의 모든 소리도 종적을 감추고 진실하게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신의 품과도 같은 것이다. 바다는 하늘을 닮는다고 했던가. 정말로 하늘에 따라 바다 색깔이 바뀌어 간다. 내가 슬플 때 가을바다를 바라보면 흑갈색으로 변하고, 내가 행복할 땐 연녹색으로 보여 지는 것이 가을바다다.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처음에는 내가 바다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바다가 나를 보며 있음을 알기에 ..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쉰 소리들을 바다를 향해 부르짖고 파도 소리에 눈물을 묻어버릴 때도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안하게 보이는 가을바다는 ‘바다 속에는 동화가 없다,’란 어느 영화 대사처럼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고통을 그도 안고 있기에 내 모든 쓴 잔을 이해하며 내 모든 부끄러움을 탓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친구가 가을바다이던가. 주여, 가을바다는 내게 참된 인생의 여유를 주며 가족을 돌아보게 하며 그리고 친구처럼 나를 감싸줍니다. 당신은 그 바다와도 같답니다. 님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밑바닥은 알지 못하나 적어도 나를 애타게 부르는 그 음성만은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겨울이라는 인생의 3막 4장에서 당황하지 않게 하소서 .. 2014년 9월 27일 늦은 오후에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이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우기자님, Rimi님, 포남님, 이요셉님
^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