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고향 / 유안진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