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고향 / 유안진 / 음정 雲鈺님

그 작은숲 강가 2015. 2. 17. 23:57



      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고향 / 유안진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