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흔적 / 정희성 / 음정 雲鈺님

그 작은숲 강가 2015. 2. 15. 22:31



      먼 날 / 우대식

      화롯불에 호박 된장국이 뉘엿뉘엿
      졸아가던 겨울밤
      육백을 치다가
      짧게 썬 파와 깨소금을 얹은 간장에
      창포묵을 찍어 먹던 어른들 옆에서
      찢어낸 일력(日曆) 뒷장에
      한글을 열심히 썼던 먼 날
      토방 쪽 창호문을 툭툭 치던
      눈이 내리면
      이젠 없는 먼 어머니는
      고무신에 내린 눈을 털어
      마루에 얹어 놓고
      어둠과 흰 눈 아래를 돌돌 흐르던
      얼지 않은 물소리 몇,
      이제 돌아오지 않는 먼 밤
      돌아갈 귀(歸) 한 글자를 생각하면
      내 돌아갈 길이
      겨울밤 창호문 열린 토방 한 구석임을
      선뜻
      알 것도 같다


      흔적 / 정희성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저승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2년인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이 보낸
      체납주민세 납부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화곡동 어디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