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무등을 보며- 서정주 / Una Lagrima Furyiva - Giovanni Marradi / 음정 방일님

그 작은숲 강가 2016. 11. 4. 06:31
   




서정주 시인 '무등을 보며'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공론, 1954)

 



 



 

♪...Una Lagrima Furyiva - Giovanni Marradi


 

Re:무등을 보며 / 서정주